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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테이너와 물류 이야기
    경제 2022. 9. 2. 05:51

    1.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골치아픈 상황이 발생함.


     ​​2. 미국 본토에서는 전쟁 물자를 퍼붓듯이 수송선으로 보내는데, 정작 전투 현장에는 물자가 부족했음.


     3. 물류가 엉망이 된 게 원인이었음​​


     4. 베트남에는 1,100킬로의 해안선이 있지만, 미군 수송선이 들어올 수 있는 수심이 깊은 항구는 사이공항구 하나밖에 없었음.​​


     5. 그 당시 하역은 부두의 노동자들이 택배 상하차 하듯 물품을 배에서 내려야 했기에 배 한척 비우는데도 시간이 장난이 아니게 걸림.​​


     6. 미국에서 수송선이 사이공에 도착을 해도 물품을 배에서 내리려면 한 달씩 대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함.​​


     7. 배에서 짐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사이공(호찌민)에서 멀리 떨어진 다낭 근처라 현장까지 가려면 다시 차량으로 900킬로 가까운 택배를 해야 했음.









     ​​​​​8. 당연히 군수품 공급이 개판이 됨


     ​​9. 군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보통 공병이 해결을 하고,  미군 공병들이 답을 찾음.​​


    10. “모든 배의 짐들을 통일된 포장 방식으로 보내라 “ 가 답이었음​​


    11. 통일된 포장 방식 즉 컨테이너로 물류를 수송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되며, 컨테이너가 본격적으로 물류를 맡기 시작함.​​


    12. 노스캐롤라이나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사업가 맬컴 맥린은 기발한 착상을 많이해서 꾀주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음.​​


    13. 맥린은 배를 한번도 타 본적이 없었지만, 그는 화물들을 동부 항구에서 남부까지 어떻게 하면 낮은 비용으로 옮길수 없을지 고민하며, 항구 인부들이 화물을 차에서 내려 배로 옮겨 싣는 것을 지루하게 기다리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오름.


    14. 화물차에서 화물을 내리는게 아니라, 화물차 자체를 배에 싣고 가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 였음.​​


    15. 1956년 4월. 뉴어크 항구에서 맥린은 바퀴와 운전석을 떼어낸 화물차의 화물칸 58개를 불하받아 개조를 한 유조선 위에 차곡차곡 옮겨 실었음.​​


    16. 목적지는 텍사스 였고, "우리는 해상 운송의 경제성과 육상 운송의 속도 및 기동성을 결합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고 확신한다"는 발표를 하고,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함.​​


    17.미군은 위 조건으로 민간에게 입찰을 했고, 컨테이너를 처음 해양수송에 쓰기 시작한 맥린의 민간 선사가 낙찰을 받음.


    18. 컨테이너의 문제는 무게가 무거워서 지금까지 하듯이 인부의 힘으로 내릴 수가 없는 것임.​​


    19. 컨테이너를 해상수송에 쓰려면,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내릴 수 있는 전용 항구가 필요했고, 미군은 컨테이너 전용항으로 쓸만한 항구인 깜라인만을 찾아 냄​​​


    20. 깜라인만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수심이 가장 깊은 곳으로 내항은 15미터, 외항은 30미터 이상 수심이 깊어 항공모함까지 정박이 가능한 항구였음


    21. 사이공(호찌민)보다 전투현장에 훨씬 가깝다 보니 전장에 군수품을 공급하기에도 훨씬 나았음​​








    22. 깜라인만을 컨테이너 전용항으로 개발하고 배송을 컨테이너로 하자마자 모든 물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됨


    23. 미군은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지만, 컨테이너로 군수품을 배송해 주는 맥린은 고민이 다시 생김.​​


    24. 왕복 수송비를 미군한테 다 받기는 함. 하지만, 베트남으로 갈 때는 배를 꽉 채워서 가는데 미국으로 돌아올 때는 배가 텅텅 비는 게 아까운 것임.​​


    25. 맥린은 다른 사업을 구상함.​​ 베트남까지 갔던 화물선을 그냥 텅 빈 채로 미국으로 돌아오는게 아니라 일본에 들러서 미국 소비자들을 위한 저렴한 상품들을 싣고 오게 하는 사업이었음.​​


    26. 일본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고베와 요코하마를 컨테이너 항으로 만들어 빈 배를 채워줄 테니, 운송비를 싸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됨.​​


    27. 고베와 요코하마에 컨테이너 전용부두가 만들어지고, 이곳에서 출발하는 미국향 컨테이너 수출품 운송비가 낮아지자, 일본 상품들이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미국 가정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고, 수출로 일본 경제가 급성장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됨.​​


    28. 당시 한국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음.​​


    29. 일본과 미국의 교섭사실을 파악한 한국 정부는 1974년 부산항 종합 개발 사업을 시작해서, 컨테이너 전용부두 건설에 착수했고, 1978년에 5만 톤 급 컨테이너 2척이 동시 하역이 가능한 컨테이너 전용항을 부산에 만듬.​​


    30. 지금의 부산항 제5부두임.​​​​​










    31. 컨테이너 전용항구로 먼저 오픈한 일본의 고베항은 1970년대 아시아 최대이자 세계4위의 컨테이너항이자 환적항이 되었는데,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발생함.



    32. 고베항이 지진으로 망가지자, 선주들이 부산항으로 대거 이동하니, 부산항은 고베 대지진 이후 하루 200개 정도가 들어오던 컨테이너가 850개 수준으로 물량이 점프함.​​


    33. 부산항으로 이동한 선주들은 고베항 수리가 끝나도 대부분 복귀하지 않고 부산항에 주저앉음. 


    34. 일본보다 태풍이 훨씬 적게 오는 지리적 장점도 장점이지만,  한국인 특유의 원칙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성향에서 나오는 빠른 상하차 가 경쟁력이 되어서 부산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함.​​


    35. 부산항은 세계 16위 항만이었으나 지진이후 5위로 올라섰고, 고베항은 지진이후 4위에서 57위로 떨어지며 경쟁에서 밀려나게 됨.​​


    36. 맥린은 2001년 사망함.​


    37. 그의 장례식날 전 세계 바다를 오가는 컨테이너 화물선들은 기적 소리를 울리며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고, 그의 부고 기사에서는 "범선이 기선으로 바뀐 이래 해상 운송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이 컨테이너 였다"고 맥린을 추모함.​​​​​​​









     한줄요약. 정부도 할 일을 했고, 지진으로 하늘도 도와주던 것을 보면, 저때는 국운이라는게 있었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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